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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이야기

[2] 대한민국 경제발전 역사 스토리 - 산업화와 고도성장기

[1] 대한민국 경제발전 역사 스토리 - 찢어지게 가난했던 전후 상황

아프리카 가나 1인당 국민소득 전 세계 111위 아프리카 빈국중 하나이며 아직까지도 경제원조를 받고 있는 중입니다. 대한민국 전 세계 10대 선진국이자 경제규모 10위의 경제대국이며 K-POP으로

moneygangster.tistory.com


이전 이야기를 보면
 
광복 이후 6·25 전쟁을 겪으며
 
세계 최빈국 위치의 대한민국이
 
초대 이승만 정부를 거쳐
 
박정희 정부의 탄생까지
 
이어졌었죠.
 
 
과연!!
 
 
박정희.
 
그가 세 사람을
 
불러서 하려고 했었던 말은
 
대체 무엇이었을까요?
 
 


 
김성범 (산업은행 조사부)
백용찬 (부흥부 산업개발위원회 조사위원)
정소영 (재무부 토지조사과장)
 
이 세 사람은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앞으로 불려 갔습니다.
 
 
박정희 의장은
 
단호한 어투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 나는 이승만 대통령을
 
애국자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경제개발에 신경 쓰지
 
않은 점은 마음에 들지 않죠.
 
 
가난에 허덕이는 국민들...
 
 
우리가 혁명을 한 것은 
 
바로!
 
5000년 묵은 가난을 해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계획이 있어야만 합니다! ·····


8
·15 광복절 이전까지
 
작업을 마쳐주세요.
"
 
 
 

계획.

 
 
그것은 바로
 
 

경제개발 계획이었습니다.

 
 

경제개발 5개년계획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대대적인 시작을 알리는
 
계획이었죠.
 
 
 
그렇게 김 씨 등
 
세명은 최고회의 건물
 
구석방에서
 
엄청난 계획의
 
작업이 시작됩니다.
 
 
그리하여!!
 
 
5개년 계획의 기본 안 마련!!!
 
 
그 내용은
 
 

10년 내 소득과 경제규모를

 

2배로 늘리는 것.

 
 
 
당최 허무맹랑한
 
목표였습니다...
 
 

큰 문제는 .
 
 

당초 1차 5개년 계획은
 
대외의존도를 줄이고 
 
경제자립도를 높이는
 
방향이라서
 
수입을 많이 해야 되는
 
구조였습니다.
 
 

미국에 간 박정희

많은 사업비용 탓에
 
지원 요청차
 
미국에도 방문했지만
 
문전박대를 당하고
 
빈손으로 돌아온
 
박정희.
 
 

밖에서 돈을 벌어오지 않으면
 
계획을 추진할 수 없는 절박감에
 
1963년
 
수출제일주의가 
 
핵심과제로 떠올랐습니다.
 
 
 

그리하여
 

 
섬유공업 등 경공업이
 
수출 주력 품목으로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경공업 : 무게가 가벼운 생산품을 생산하는 공업.
섬유 공업, 식품 공업, 고무 공업 등의
소비재 산업이 중심이 된다


 

오로지 수출만이 살길!!!

 
 
 
이라는 슬로건 아래
 
정말 다양한 상품들을
 
수출했었습니다.
 
 
 
 

여기서 퀴즈!

 
 
 
60년대 대한민국의
 
수출 품목 1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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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바로!!!
 
 

가발

 

 
입니다.
 
 
 
가발이며 신발, 장갑, 섬유 등등
 
 
그만큼 수출을 위해서
 
다양한 품목들을
 
나라 밖으로 팔아서
 
돈을 벌었던 것입니다.
 

( 나라가 기술이 없어 
팔게 없으니
 
그때 당시에는
 
오줌부터 쥐털까지
팔았습니다.
 
오줌은 중풍 치료제에 쓰이는
'유로키나제'라는 단백질 효소를
추출하기 위해서
 
쥐털은 '코리아밍크'라고 해서
수출했었죠. )
 
 
 
그러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수출 급성장

 
1960년
 
3283만 달러였던 수출액은
 
 

1966년
 
2억 5575만 달러
 
껑충 뛰었으며,
 

 
1970년대에는
 
무려
 
10억 380만 달러
 
기록했던 것이죠!!
 
 
 

그 과정에서
 
우리 국민들!
 
우리 아버지, 어머니 세대가
 
엄청난 고생을 했습니다.
 
(필자는 96년생입니다.)
 
 
 

전태일의 외침

 
근로기준법이
 
지켜지지도 않는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
 
피를 토하며
 
공장에서 일을 했었죠.
 

 
뿐만 아니라
 
 

60년대 초부터
 
외화벌이를 위해서
 
독일로 광부와 간호사들이
 
파견되었습니다.
 

만 명이 넘는 광부와 간호사들은
 
외화벌이를 위해
 
지구반대편으로 날아갔으며
 
 
파견조건으로는
 
3년 동안 한국에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그 당시의 파견 근로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무시와 차별은 아주 
 
상상이상이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광부들은 지하 1000m가 넘는
 
석탄광산 막장에서
 
중노동에 시달렸으며,
 

 
 
그로 인하여 
 

사망한 광부 27명
자살한 광부 3명
자살한 간호사 19명
 

이라고 합니다.
 
 

타국에서의 쓸쓸한
 
죽음이 얼마나
 
고독했을지는...
 
 
그들의 희생에
 
고개 숙여 대단히
 
존경스럽고 감사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이는 우리 모두가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대한민국의 중요한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
 
 
 
 

1967년

 

제6대 대통령 선거.

 
박정희 후보는
 
국민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공약을 내겁니다.
 
 
 

" 서울과 부산을 잇는

 

고속도로를 건설하겠습니다! "

 
 
 
그 아이디어의 시작은
 
1954년
 
박정희가 미국 포병학교에서
 
위탁교육을 받을 때였습니다.
 
 
당시 그는
 
일반도로에 비해
 
3배의 교통량 소화
 
두 배의 속력,
 
낮은 사고율
 
고속도로라는 시설에
 
매혹되었습니다.
 
 
이후
 
 
1964년
 
서독 방문길에 올랐던 박정희는
 
쾰른에서 본으로 가는 길에
 
아우토반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 순간이 박정희가 처음으로
 
말로만 듣던 고속도로를
 
처음 경험하는 순간이었습니다.

 
 

160km


 
 
아우토반에서 승용차로
 
160km로 달리자
 
박정희는 전율을 느낍니다.
 


 
박정희는 귀국하자마자
 
고속도로 건설에
 
박차를 가합니다.
 
 

 
당시 건설비만 430억
 
장비는 165만 대
 
공사에 투입된
인부만 연 893만 명
 
 
그야말로 
 
엄청난 규모의
 
프로젝트였습니다.
 

 
 
마침내!
 

 
1970년 7월 7일
 
서울에서 부산을 잇는
 
428km의 경부고속도로
 
개통됩니다!!
 


 
경부고속도로의 경제효과는
 
실로 대단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생활도
 
바꿔놨습니다.
 

 
고속도로가 있기 이전에
 
서울~대전, 서울~부산 등등
 
이동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렸습니다.
 
 
하지만
 
경부고속도로 건설 이후에는
 
대한민국 전국을
 
일일생활권으로 만들었죠.
 

 
한국이 하나의 경제권으로
 
통합이 되면서
 
여러 인력과 물자 유통이
 
원활해졌으며
 

그로 인하여
 
산업화와 지역개발이
 
가속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굉장히 웃기겠지만
 
 
60년대 북한은 남한보다
 
더 잘살았었습니다.
 

 
광복 이후
 
일본이 남기고 간
 
공장시설들이
 
대부분 북한에 있었으며,
 
 
중공업 중심의
 
경제개발계획으로
 
연평균 10~20%의 
 
초고속 성장을 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남한의
 
경제발전을 위한
 
불굴의 노력으로
 
70년대부터 역전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역전에 이바지한
 
경제발전의 주역
 
또 있습니다.

 
 
 
 
 
 
 
 
1969년
 
6~8월 사이에
 
엄청난 기습 폭우
 
발생했습니다.
 
 
그 여파로
 
전국에서는 절망과 탄식
 
쏟아졌습니다.
 

 
엄청난 홍수피해로
 
전국의 농촌은 아주
 
참담할 정도의 상태였습니다.
 
 
길은 끊어져, 둑은 사라져
 
범람한 물에 쓸려온 쓰레기와
 
농작물이 뒤영켜,
 
키우던 가축들은 죽어····
 
 

 
1969년 8월 4일
 
박정희 대통령은
 
수해복구차 부산으로 
 
가던 중이었습니다.
 
 

 
기차를 타고 가던
 
박정희는
 
경북 청도군 인근을
 
지날 때였습니다.
 
 
 
그때
 
 
 


" 잠깐 기차 세워 "

 


 
 
수행원은 갑작스러운
 
대통령의 말에
 
당황하였습니다.
 
 


 
 
박정희는 
 
왜?
 
가던 길을 멈추고
 
기차를 세우라고
 
했을까요?
 

 
다음 이야기에서 계속됩니다.